이것이 (i-geo-si) – “this is” (subject particle)
메타버스 (me-ta-beo-seu) – “metaverse”
마케팅 (ma-ke-ting) – “marketing”
이다 (i-da) – “is” (copula/to be)
PART 1. 메타버스 쉽게 이해하기
메타버스 (me-ta-beo-seu) – “metaverse”
쉽게 (swip-ge) – “easily”
이해하기 (i-hae-ha-gi) – “understanding/to understand” (noun form)
01 메타버스, 도대체 무엇인가?
01 메타버스, 도대체 무엇인가?
메타버스 (me-ta-beo-seu) – “metaverse”
도대체 (do-dae-che) – “on earth/exactly/just what” (emphasizes confusion or curiosity)
무엇 (mu-eot) – “what”
인가 (in-ga) – question ending “is it?”
사실 시작은 소설이었다
사실 (sa-sil) – “actually/in fact/truth”
시작은 (si-jak-eun) – “beginning/start” (topic particle)
소설 (so-seol) – “novel/fiction”
이었다 (i-eot-da) – “was” (past tense of 이다)
가상의 ‘나’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있다.
가상의 (ga-sang-ui) – “virtual/imaginary” (possessive)
‘나’를 (‘na’-reul) – “‘me’/I” (object particle, in quotation marks)
통해서만 (tong-hae-seo-man) – “only through/through only”
들어갈 수 있는 (deu-reo-gal su it-neun) – “can enter/able to enter” (descriptive form)
세계가 (se-gye-ga) – “world” (subject particle)
있다 (it-da) – “exists/there is”
이 세계는 그야말로 가상의 공간이라 실제의 ‘나’로는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공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가상의 ‘나’를 창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바타다. 1992년 미국의 SF작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은 자신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이런 세계를 언급했다. 당시에는 아마 어리둥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상의 ‘나’라는 개념 자체도 생소했을 것이며, 현실을 넘어선 가상의 공간이 어색하게 다가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SF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렸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현실과 다른 가상이라니 무슨 사후세계를 뜻하는 게 아닐까’라고 상상의 나래를 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어리둥절했던 개념은 체계화 과정을 거친다. 3차원 가상현실 기반의 게임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심즈〉라는 게임이 2000년에, 〈세컨드 라이프〉라는 게임이 2003년에 등장했다. 심즈는 신나는 삶을 살아보자는 목표 아래 캐릭터를 만들어 가상의 공간에서 인생을 창조하는 게임이었다. 세컨드 라이프는 3차원 가상공간에서 콘텐츠 개발 도구로 게이머가 상상한 거의 모든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확장 가능한 공간에서 상상했던 인물, 혹은 이야기를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두 게임 모두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메타버스라는 개념에 잘 어울린다. 심즈와 세컨드 라이프의 캐릭터는 모두 가상공간에 존재한다. 하지만 마치 현실에 있는 자신의 존재처럼 하나의 삶을 살아가며,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고 창조가 가능하다. 이런 게임의 인기와 함께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개념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원점으로 돌아가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메타버스(Metaverse)는 메타(Meta)라는 단어와 유니버스(Universe)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메타라는 단어는 가상, 혹은 초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니버스는 우주, 공간 등을 뜻하는 단어다. 즉, 합치면 ‘가상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실제의 메타버스는 가상공간이라는 단순한 의미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뜻을 가진다.
VR이라는 단어를 기억할 것이다. VR체험, VR게임 등 다양한 개념을 만들어내며 인기를 얻은 단어다. VR은 보통 가상의 세계에서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그래서 VR을 활용한 게임들을 보면, 해당 게임에서 어떤 행동을 통해 실제 세계에서 그 행동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존재했다. 바로 소통의 부재다. 분명 체험은 가능하지만, 이 체험이 사회적 가치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물론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소통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VR 기기를 활용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VR 자체로 소통의 크기를 키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 소통이 가능한 부분이 생겨도, 이는 게임 내부에서의 활동에 불가할 뿐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입증할 수 있을 만한 의미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즉, VR은 현실을 복사해 가상공간에 옮겨놓았지만, 우리의 소통에 대한 열망은 이동시키지 못했다. 그러니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고, 반쪽짜리 경험인 듯한 아쉬움이 존재했다. 특히 소통이 중요한 사회, 문화, 행사, 마케팅 등의 목적에서는 VR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단발성에 그치는 한계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런 아쉬움을 해결하는 개념이 바로 메타버스였던 것 같다. 메타버스는 가상공간에서 현실 세계의 행동들을 한다는 것에 대해선 VR과 유사하지만, 현실 세계와 완전히 똑같이 소통한다는 점에서는 차별성을 가진다. 가령 가상공간에서 문화생활을 즐긴다거나, 혹은 액티비티를 즐기기도 한다. 또 사회적인 상황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며, 체험을 위해 방문한 가상공간에서 타인과 소통할 수도 있다. 마치 나의 분신이 가상공간에 존재하고, 나와 똑같은 일들을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서 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그러니 VR은 단순 체험에 불과했다면, 메타버스는 그야말로 ‘나’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가상공간에 진입해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공간에서 구현한 부분에 따라 약간의 제약은 존재하겠지만, 현실 공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을 대리하는 아바타를 이용해 제약 없이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나, 그리고 나를 대신하는 ‘나’
사실 가상공간이라는 개념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3D라는 이름으로 가상공간을 오랫동안 경험해왔다. 게임에서 정교하게 구현된 3D 그래픽을 만나보기도 했으며, 각종 마케팅과 브랜딩을 위해 가상공간을 만들어낸 사례도 숱하게 봐왔다. 하지만 이 개념은 메타버스와는 거리가 멀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앞에서 말한 소통의 부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 빠지면 가상공간에서의 ‘나’는 현실의 ‘나’를 대신하는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 입체적이지 못하고, 평면적인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메타버스가 과거에 봐온 가상공간이나 VR과 다른 지점이 없었다면 새로운 용어로 사용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상공간, 3D, VR과 같은 단어 대신 우리는 메타버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즉, 명확한 차별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예 단어를 새로 언급해야만 했다.
기존 개념과의 확실한 차이는 결국 ‘나’의 존재감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익히 봐왔던 과거의 가상공간과 관련된 개념들은 ‘나’의 존재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가능했지만, 이 대화가 익히 경험해오던 사회생활에서의 소통과는 차이가 있었다. 키보드나 핸드폰 문자 창에서 열심히 쓰는 메시지는 마치 채팅과 유사한 형태였고,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확신은 전혀 주지 못했다. 결국 평면적 경험이었기에, 이런 가상공간에 대한 이슈가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양한 주제로 뻗어나갈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단순 체험이나 게임 쪽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의 ‘나’의 존재감은 현실에서의 나와 거의 동일하다. 먼저 아바타를 보자. 아바타는 현실의 나를 반영할 수도, 혹은 현실에서 꿈꾸던 나의 모습을 창조할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을 선택해도 현실에서의 나와 큰 연관성이 있으며, 현실에서의 내가 머릿속에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반영하게 된다. 또 아바타는 나의 대리인이 되어 메타버스 공간 내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친다. 문화생활을 하기도 하고, 경제활동을 하기도 한다. 강의를 듣기도 하고, 회사 내에서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하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기도 하며, 공간에 참여한 또 다른 아바타들과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다양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공간만 가상일 뿐, 현실의 일들과 완전히 같은 모습이다. 바로 이 부분이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모두에게 미래를 말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된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기존의 개념들이 가졌던 아쉬움을 극복하고, 현실에서의 상황을 그대로 가상공간으로 옮겨놓은 것이 메타버스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현실에서의 ‘나’와 가상공간에서 나를 대신하는 ‘나’의 존재가 이제는 평행선 위에서 완벽히 연결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연결은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간 온라인 환경에서 숱하게 많은 일들을 진행해왔다. 특히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통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마케팅을 시도했다. 이 중 성과가 좋은 것도, 또 성과가 좋지 않은 것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아쉬움은 무엇이었나? 바로 조회수와 좋아요로 대표되는 단편적 반응으로 측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픽셀이나 구글, 네이버 등이 서비스하는 각종 전환 추적툴을 이용해 대중들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는 있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구매와 연결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콘텐츠와 스토리텔링 등 내러티브 구조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픽셀이나 전환 추적이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디지털 마케팅 활동에 실제적으로 반응하고, 이런 대중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거나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했음에도 마땅한 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디지털 마케팅의 목표를 판단해 각 목표에 맞는 자료를 수집하는 일 역시 단순한 과정 속에 이뤄지진 못했다. 그런데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단편적인 반응 측정에 아쉬움을 느꼈던 수많은 기업과 기관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메타버스는 가상공간을 현실과 동일한 형태의 행동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했고, 이를 통해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디지털 마케팅 메시지에 좀 더 입체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환경도 메타버스가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현실에서의 대중, 그리고 그들을 대체하는 가상공간의 또 다른 자아를 동시에 공략하는 이상적 상황도 연출할 수 있었다. 분명 가상공간에서 의미 있는 노출이 이루어진 대중들은 현실 공간에서도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실과 가상, 두 가지 공간에서 모두 노출과 선택을 일으키는 색다른 디지털 마케팅 환경의 시작이었다.
이런 상황들을 최적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실과 가상공간의 유기적 연결이 필요했다. 현실에서의 내가 가상공간에서의 나와 평행선 안에 존재해야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타버스는 그걸 해냈다.
